비로그인 댓글을 싫어하는 이유는 사실 대단찮은 이유입니다. 예의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죠. 그리고 익명성을 무기로 삼는 모습이 비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넷도 이제는 일종의 사회적 광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곳에서 자신을 숨긴다는 것은 비겁하고 뭔가 다른 생각이 있다고 생각해서 믿지 않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 부분은 다른 포스팅에서 다뤄 보겠습니다.
1. 수준이 낮아진게 문제인가? 문이과를 나누지 않은 채 대학에 와서 선택하도록 하는 교육체제가 더 나은것 아닌가? 수준이 낮아진것은 문이과 체제의 결과일 뿐 아닌가. 문이과를 구분하지 않았다면 고등학생들은 모두 같은 내용을 배우고 진학했을 것이므로 글쓴이가 원하는 수준 문제도 해결될텐데?
전혀 다른 문제를 이야기 해서 당황했습니다. 전 엄밀히 말해서 교수님이 학생의 주장(문과라서 미적분을 안 배웠다는)에 대한 문제가 교육의 질적 저하가 문제가 아닌 문이과를 나누기 때문이라는 주장에 반박한 것에 불과합니다. 엄밀히 말해서 나눠야한다와 아니다의 문제에 대한 가치 판단은 다른 문제 입니다.
저는 그 문제가 문이과를 나눔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라기 보다는 평준화 정책으로 전체적인 수준이 낮아진 것이 문제라고 이야기 함으로서 서울대생의 이야기를 지지 한 것입니다. 문이과를 나눔으로써 생긴 문제라면 이제와서야 나올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면서 이야기 한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웃긴 이야기지만 같은 내용을 배운다고 모두 원하는 수준이 되지는 않는다는 지극히 단순한 문제가 있죠. 저는 지금 수준의 교육이 너무 낮아졌다고 불평하고 있는 겁니다. 하향 평준화가 지나치다고요. 외국의 경우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하는 형식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교육 형태도 방법도 다른데 외국에는 존재 하지 않는 문이과를 나눈다고 타박하는 것도 제 입장에서는 웃깁니다. 문이과를 선택하는 문제가 심각하다면 자신의 수준에 따라서 자신이 들을 과목을 고르는 저건 얼마나 더 심각한 문제인 거죠?
2. 비판인가? 교수와 같은말을 반복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증명이나 이론중심의 수학을 하지 않고 무조건 푸는 수학을 하는 우리나라에서 대 수학자가 못나오는 이유이지요. 수학이전에 논리를 더 강화해야 하지요." 부분과 글쓴이의 "암기로 풀수있게끔 내는 현 교육 수준의 문제"라는 말은 동어 반복아닌가.
개인적인 생각을 추가하자면... 한국에서 경수와 선대와 수리경제학만 들어도 경제학과 학부 수준에서 충분히 써먹는다. 최병선 같은 좋은 교수님을 두고 할 푸념이 아니라 생각한다.
반복일리가….. 저는 그 문제를 평준화 교육에서 찾고 있고 교수님은 암기식 주입식 교육에서 찾고 있습니다. 둘 다 수학이 이런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기본전제는 같습니다만 방법론적인 방법이 아주 다르잖아요.
저도 경제 수학만 하면 학부수준에서 필요한 미적분은 기본 개념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형까지 갈 필요 도 없죠. 수리경제는 미시 심화가 되서 학부수준을 넘을 때가 있으니..패스
3. 이건 군대 문제이지 교육과정 문제인가-_-; 대학때 배운건 까먹고 고딩때 배우면 안까먹는다는 어이없는 논리는(...)
언제 안까먹는다고 하나요. 저런걸 트집잡는 교수가 맘에 안 든다는 거지. 어린 학생의 말 실수를 배우실 만큼 배운 지고한 위치의 교수가 잡고 있으니 기가 막힌거죠.
5. 경제학 용어에서 무능과 비효율은 등치 아닌가? 기본적으로 경제학의 전제는 "경제인"이고 가장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선택을 하는 인간이지, 소 뒷걸음질치다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을 "합리적"이라고 하진 않는다. 글쓴이는 랜덤워크를 공부해보는게 좋을것 같다.
일단 용어에서 저랑 일치 하지 않는 거 같군요. 그리고 제 말 어디에서 소 뒷걸음질이 나오는 건지 궁금하네요. 우연으로 나오는 합리적 선택에는 저도 관심 없습니다. 설마 말꼬리라는 말을 이해를 잘못 하진 않았을 태고, 음…
무능한 후보를 고르는 것은 비효율적인 선택입니다 라면 모를까. 무능이 곧 비효율이라니 어딜 납득하라는 겁니까. 그 둘은 비슷한 말일 수는 있어도 결코 같은 뜻인 단어는 아닙니다. 뭘 그런걸 가지고 그러느냐면 할말이 많지는 않습니다만 소위 학자라는 사람이 할만한 실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옵션(선택사항)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은 그것들 중 어느 것이 가장 나은가에 대한 선택이지 위에서 말하는 사항을 이야기할 사항은 아닙니다. 위 후보가 여러 가지 문제를 가졌지만 그래도 뭐보다 낳아라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무리가 없는 선택입니다. 이건 가치판단의 문제이지 비난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이러한 정책 공방이 심한 경우에는 후보 개인이 아닌 정책으로 보고 고르는 것이 옳은 거 같습니다. 물론 후보 개인도 좋으면 좋겠지만 이번 교육감 선거는 개인적으로 평준화 정책의 유지 및 개선이냐 아니면 경쟁적으로 가느냐 선택의 기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자신이 생각하는 정책에 맞게 후보를 고른 것이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것이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언제부터 우리 대한민국이 내 투표권에 대해서 저런 소리를 들어야 합니까? 근본적으로 이건 우파나 좌파냐를 떠나서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생각하면서 이야기 하는 모습 경멸스럽습니다.
6. 측정된 데이터의 분포를 모를때는 통계학적으로 정규분포를 쓰는게 가장 합리적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수능에서 표준 점수가 정당화 되는 이유중 하나가 학생들의 성적 분포가 정규분포라는것을 모르는걸까. 정규분포의 하위값을 버린다고 해서 정규분포가 반이 뚝 잘린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생각하는걸까? 통계학 입문을 들었는지 의심스럽다.
통계학 입문을 이야기 하기 전에 고등학교 정규 분포를 배웠는지를 묻고 싶다. 혹시 이야기 하려는게 표준 정규 분포인가? 그렇다면 미안한데 난 모든 나라의 성적의 표준편차가 1일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애당초 표준 편차는 다르다는 가정하에 시작해야 옳다. (아니 책으로만 통계학을 배웠나. 정규 분포 곡선 모양이 얼마나 많은데 설마 한 개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라. 정규분포의 모양에 따라서 설명이 가능한데 이런이야기를 해야 하는 내가 한심하고 댁도 답답하다. (이 부분 말이 싸가지 없게 들릴 수도 있는데 먼저 화나게 했으니 이해 바란다.) 그림이라도 그려줘야 하나.. 하위 값을 버린다는 뜻이 그럴 잘라 내다 버린다는 뜻인가? 그렇게 이해했다면 말이지 통계학 입문 이야기 하기전에 고등학교 통계학 공부를 조금만 하자. 상식선에서 생각을 해야지 원, 그렇게 하면 평균도 오르잖아. 그런 방법이 가능할리가. 수준이 더 낮아져도 신경쓰지 말고 상위권의 아이에게 투자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지 즉 정규 분포 곡선이 옆으로 더 길어지고 가운데가 얇아지는 그래프를 말하는 거다. (수준을 보아하니 편차가 어쩌고 이야기 해봐야 모를꺼 같아서 쉽게 말로 하려니 힘들다.)
즉 상위 0.5%의 성적은 다를 수도 있다.
거기에다, 허수아비 논증을 펼치고 있는 모습은 논의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있다. 구체적으로 ". 지금은 악의의 경쟁을 가져서 서로 깎아먹으면서 제로썸 경쟁을 하고 평준화 정책을 가지면 성의의 경쟁을 하게된다는 건가요? "라는 부분이다. 지금은 평준화 정책을 시행한지 분명 10년이 넘어갔으며, 이 상황에서 학업성취도 결과에 대해서 교수의 해석은 "경쟁도 서로 지원하며 선의의 경쟁을 하는 방법을 무시하고"라고 되어 있으며, 이 문장은 "평준화 정책 하에서 한국의 교육 성취도는 상위이다."라는 문장에 대한 원인 제시로 보는게 타당하며, 따라서 글쓴이가 반박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이 틀린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글쓴이는 자신의 위치를 모르면 경쟁을 할 수 없다고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타당하지 않은 바, 기본적으로 교육은 위치재이고, 결과(평가)에 따라 재화의 가치가 결정되는 만큼 평가가 불명확할수록(즉, 불비정보하에서) - 교육재가 매우 선호도가 높은 재화라 가정할 때 - 자신이 원하는 평가를 얻기 위해 평가를 알았을 때 이상의 노력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자신의 현재 위치와 관련된 모든 가용한 정보를 통해서 자신의 정확한 위치추정의 기대값이 0일때의 노력수준(공부수준)을 선택할 것이며, 이는 자신의 위치가 상위권일수록 완전 정보일때의 노력수준(공부수준)보다 높게 된다.)
즉, 나는 교수의 주장인 "평준화가 학업성취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지지하나 그 근거인 "선의의 경쟁"은 지지하지 않는다. 동시에 글쓴이의 "평가가 필요하다"는 근거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결론적으로, 평가는 제공된다. 바로 수능때.
이 부분은 기본적인 견해가 다르니 논의가 피곤해질거 같다. 일단 기본적으로 나는 수능때만 나오는 평가가 무의미 하다는 거다. (거기다 최근의 수능은 평가라고 하기가 미안하다.) 그건 아이들에게 일종의 완성형이다. 그 전에 공부를 하도록 유도 할 수 있는, 자신의 위치를 자극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하듯 의미 없는 중간고사 같은 것이 아닌 재대로 된 자기 평가 혹은 정보를 제공하는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말한다. 물론 이것은 애들 피 말리는 짓이다.
7. 고등학교 공부를 제대로 해야한다는 것이 무슨뜻인지에 대해서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 한국에는 4천만이 생각하는 "제대로 된 고등학교 공부"가 존재한다.
여태 내가 하는 이야기를 종합하면 된다.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교수가 말하고 있는 대학에서의 공부가 상식적으로 고등학교에서 하면 안될 부분이라도 있는가?
거기에 나는 현 체제가 잘못되었다는 공감하에 새로운 방식의 필요성을 이야기 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비단 어떤 것이다라고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이야기 하기는 너무 길다.
8. 인용해서 비판한 문장에서 강조는 앞의 "후배를 위하는 것처럼"에 있다. 그걸 잘못 인용해서 마치 교수가 "넌 우파잖아!"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처럼 인용하는데, 맥락을 무시한 앞뒤 잘라먹기는 논의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될수 있는 토론(합의의 여지가 있는 논쟁)을 말아먹는 짓을 하게 된다.
정확하게 설명하면, 인용한 문장은 "다른 사람을 위하는 척 하지 말고 자신의 입장을 말하라"는 뜻이지, "넌 우파야!"라고 규정짓는 것이 아니다.
'제발 얄팍한 지식으로 마치 후배들을 위하는 것 처럼 그렇게 쓰지말고, 그냥 한나라당과 뉴라이트가 좋다고 해도 누가 머라하지 않아요."
내가 이렇게 붙였는데 이게 앞뒤를 잘랐다는 생각은 안 든다. 그리고 “그냥 한나라당과 뉴라이트가 좋다고 해도 누가 머라하지 않아요." 이 부분에서 교수의 화법은 우파라는 말보다 질이 나쁘다. 나는 그래도 순화 시켜 놓은거다. 그리고 토론에서 저런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명백히 토론할 생각이 없는 인간이다. 그런 인간과의 대화까지 신경 써주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저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사실 다른 문제인데 네가 볼때는 너처럼 어설프게 아는것은 나서서 그럴듯한 말로 혼동주지말고 나 같은 사람말을 그냥 들어라라는 자의식이 깔려있는걸로 보인다 아닌가? 솔직히 저 서울대생의 글은 처음부터 교육 정책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어떤곳에서도 특정 정당이나 단체를 지지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닌가? 그런데 왜 그런 글로 깔아 뭉개는가?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저런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나는 개인적으로 경멸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 척 하면서 이야기를 한다는데 그렇다면 저 학생은 뭐 하러 선거에 참여했을까? 자기가 교육 받을 것도 아닌데, 나름대로 교육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의식을 가지고 했을 것이다. 최소한 우리 사회에서 저런 학생을 비웃는것 그것도 교육자이자 지성의 최고 권위자인 교수가 나는 결코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투명하고 공정함을 주장해야 할 경제학도"라는 말에 대해서, 그것이 불가능하기에 다른 길을 주장하는게 무엇인지 좀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부패도 효율적인 경우가 있다. (뇌물 관련 이론의 경우 특히.) 다만 그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은 경제학자들도 인정하며, 따라서 유인구조를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괜히 쓸데없이 중고차시장(레몬시장)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주는것이 아니란 말이다.
당장 이야기 하고 있는 레몬시장도 소위 말하는 데스 스파이럴(레몬시장 이야기 할정도 알겠지 설명 안한다.)때문에 정부의 개입을 긍정하는 내용으로 알고 있다. 이것은 시장의 성립이 불가능하기 대문에 정부의 개입을 이야기 하는 내용이지 투명과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투명성(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을 위해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지만 선후가 다르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게” 라는 말 언득 듣기에 투명과 공정과 상관있는것처럼 들리는지 모르겠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불투명하고 불공정한것이 아니라 사회적 후생을 해치는 것이다.
경제학은 투명과 공정이 아닌 사회적 후생의 총합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사회적 후생의 총합은 위에서도 말하듯이 뇌물의 경제학이나 다수결에서 매표행위 즉 사회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고 보이는 것이 사실 사회적 후생을 더 많이 만든 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을 효율로 이야기 하니 말이 꼬이는 거다. 사회적 후생으로 생각하자.
차라리 경영학도에게 투명과 공정을 이야기 하라. 그들은 그런 도덕쉽이 필요한 존재다. 지킨다는 것은 별개로 말이다.
비로긴이라 지울수도 있을텐데, 그전에 한번 글쓴이가 읽어보는것만으로 나는 상관이 없다. 뭐, 스압때문에 그냥 지울수도 있겠지만, 그거야 글쓴이 수준이겠지. 본인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 반론을 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이 사족 왜 단 거냐? 그냥 달지 말지.. 안 그랬으면 열이라도 안받지. 교수나 너나 자의식 과잉이다.
ps. 제길 회사에서 나 뭐하는거야 일안하고.



덧글
그때그비로긴 2008/08/09 09:38 # 삭제 답글
1. 정확히 건드린게 맞다. 난 교수입장에서 재반론을 편 것이다. 아직도 납득하지 못하겠다면, http://sprinter77.egloos.com/1914604 에 나온 표와 평준화 정책간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생각해 보라.2. 내가 인용한 부분을 살펴보라. 동시에 평준화 교육과 암기식 주입식 교육의 개념간 관계를 살펴보라. 평준화 교육과 주입식 교육이 완전 배치되는 방법인가? 주입식 암기식 교육과 평준화 교육은 "다른"것이며 "공존"할 수 있다. 개념간의 관계가 대립하거나 부분대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방법론적 방법"(방법론이라고 해도 될것 같지만)이 얼마나 다른지 증명하는 것은 글쓴이의 몫이나, 거기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3. 여기의 재반론에서 글쓴이의 문제가 드러나는데, 애초에 글쓴이는 "아직 철이 덜든 어떤 불쌍한 학생 vs 알거 다 아는 교수의 공격" 이라는 식의 감정적인 구도를 가지고 이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교수와 학생의 글 각각이 다른 패러다임을 취하고 있어서 양립불가능한 것이 아닌 이상에야 학생과 교수의 글은 각각의 논리로 평가받아야 한다.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에 포함될 수도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으나, 이는 논의의 범위를 벗어나므로 논하지 않는다.)
5. 무능과 비효율이 왜 다른뜻인가? 경제학의 기본 전제인 "합리적 경제인"에 비추어 볼때 무능이란 합리적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태 아닌가? 따라서 그 선택은 비록 최적 선택을 할 수 있을지라도 어디까지나 "무작위적"인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에 합리적이라 할 순 없지 않은가?
글쓴이가 이해한 무능과 비효율의 관계를 알려주면 좋겠다.
(그리고 랜덤워크를 공부하라는 것은 위의 설명한 무작위적 선택의 결과를 언급하기 위해서인데, 너무 인신공격으로 간것 같아서 사과한다.)
6-1. 감정적으로 흥분하기 전에 본인이 "밑에를 버리고 나가면"라는 중의적 표현을 쓴 것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뭐 낚였구나! 라고 기다린 거라면 모를까.
뭐 암튼 본인의 무지에 대해 심심한 사과를 표하는 바이다.
반박은 http://sprinter77.egloos.com/1934124로 갈음한다.
6-2. 나의 논증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그 전에 공부를 하도록 유도 할 수 있는, 자신의 위치를 자극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하듯 의미 없는 중간고사 같은 것이 아닌 재대로 된 자기 평가 혹은 정보를 제공하는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말한다."라고 말했는데, 내가 논증한 것은 불비정보 하에서 학생들이 합리적 개인이라 가정할 때 오히려 상위권의 노력 수준이 완전정보 하에서보다 높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세운 모델의 전제를 반박하거나 새로운 제약을 추가한 모델을 세울 일이다.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되면 공부를 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하려면 그 이유를 대라.
7. 글쓴이가 제대로 된 공부에서 새로운 방식의 필요성으로 논의를 후퇴하였으니, 재반론은 생략한다.
8-1. 미안한데, 교수의 화법을 어떻게 받아들인건지 설명좀 해주지 않겠나? 내가 이해한 바로는 글쓴이가 "그냥 한나라당과 뉴라이트가 좋다고 해도 누가 머라하지 않아요."라는 부분을 정치적 낙인찍기로 받아들인것 같은데, 왜 그렇게 받아들인건가? 토론에서 저런 말하는 것이 왜 토론할 생각이 없는건가?
애초에 토론에 기본적인 규범이 있는것은 맞지만, 그것은 "암묵적"이거나 "서로 다른" 것이며, 내 경우 저 말은 충분히 교수 의견의 연장으로서 "뉴라이트와 너의 생각은 비슷하다" + "너의 생각은 내가 볼 때 후배를 위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두 주장을 효과적인 수사법 안에 깔고 있다고 보이는데, 수사법을 쓰면 토론이 안되는건가? 글쓴이가 가진 토론의 규범을 알려주면 향후 (만약 재반론을 해서 내가또 재반론을 하게 된다면) 참조하도록 하겠다.
특정 단체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는게 아니라, 특정 단체의 정책과 같은 소리를 하니까 저런 주장이 나온것 아닌가. 글쓴이는 "정치적/비정치적"인 것에 매우 민감한것 같은데, 사회에 관한 모든 주장은 다 정치적인 것이라는걸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애초에 정책과 당의 지지를 분리할 수 있을까? 대통령 선거 같은 포괄적 영역에서야 비지론이니 뭐니 할 수 있지만, 교육감 선거는 위에서 글쓴이도 언급했던 대로 정책과 당이 바로 연결되는 상황 아닌가? 오히려 교수의 글은 그점을 적절히 지적한것 같은데.)
8-2.
좀 철지난 양적 공리주의 이야기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용어를 보니 경제학 공부를 좀 한것 같은데, 재정학 공부는 전혀 안한건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게엔 양적 공리주의 역시 들어가나 롤즈의 평등주의 역시 들어가며, 당연히 사회후생함수는 각 사회가 결정하는 것이지 그것이 꼭 공리주의적으로 해석해야 될 이유는 없다.
당장 각 개인간 효용을 같게 취급한다는 전제가 깨진지가 오래인데......
8-3.
자의식 과잉? 본인이 반론하기에 힘에 부치는 것을 그렇게 푸는건가?